후대에 물려줄 세상

2007년 출간된 전쟁을 팝니다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2010년쯤에는 거의 모든 병사가 위성을 통해 전 세계 통신망과 연결되는 단말기를 몸 어딘가에 부착하게 될 것”이라며 “이 단말기는 컴퓨터, 팩스 등 개인 통신 장비로 손색이 없을 것이며, 병사들은 휴식 시간에 이를 이용해 데이트 약속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견고한 로봇 비행기가 며칠 동안 외딴 지역 상공을 선회한다. 장착된 감지 장치에 적 탱크 편대가 잡힌다. 이 정보는 곧 위성을 통해 송신되며, 다시 지상에 설치된 수신 시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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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상공을 선회하고 있던 로봇 비행기가 화염에 휩사인 탱크를 감별해 낸다. 이 장면이 다시 위성을 통해 사령부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전달돼 작전이 성공했음을 알린다.

첫번째 글은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1999년 은퇴를 하며 했던 말입니다. 2017년에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이 50%를 넘어섰다고 하니, 병사 뿐만 아니라 엄청난 인구가 전 세계 통신망과 연결되는 단말기를 가진 셈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기사는 1998년 Newsweek에 기고되었던 기사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이 당시에는 군사기술혁신 마니아들이 열광할만큼 혁신적인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화염에 휩사인 탱크를 감별해내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20세기 말 공상처럼 말하던 것들이 2020년대에 들어서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이 책에서는 군사기술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고 실제로 전쟁을 통해 수많은 기술이 발전해왔지만, 이제는 민간의 기술 혁신을 군에서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해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물려줄만큼 세상을 오래 산 것도 아니지만 후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끔 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데에 급급할 뿐, 그 세상 속에서 어떤 것이 필요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거의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


19세기 초반,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인 방적기를 부수는 운동이었는데, 이는 단지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긴다라는 분노 뿐만 아니라 인류의 자아 실현에 절대적인 역할을 했던 노동에서 인간이 입지가 줄어든다는 공포에서 기인한 운동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간은 신기술을 누리기도 하지만, 두려워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200년 전 러다이트 운동에 대해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이제 인류는 노동에서 입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입지 자체가 사라지는 세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봇, 인공지능, 자동화 등으로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날 생산에 대한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소득 등의 사상이 나오고는 있지만 산업화 이후 신성시하던 노동의 가치를 인류가 쉽게 놓을리 없습니다. 이 논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합의된 새로운 경제체제가 인류에 정착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이 이어질 듯 합니다.

발전된 기술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기술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법 또한 후대에 꼭 물려줘야 합니다.